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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

by gun hee 2024. 10. 7.

 

책소개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유례 없는 저출생 시대, 한편에서는 어린 존재에 대한 추앙을 늘어놓지만, 또 한편에서는 어린이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넘쳐난다. 마음껏 뛰어 놀 여백 하나 없는 도시 환경,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드러내놓고 아이들을 배제하는 노 키즈 존, 어린이 양육과 돌봄을 부담으로 여기는 가정과 학교 분위기…….

 

어린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시선과 어린이에 대한 혐오를 넘어,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어린 시절이 조금 더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이 어린 동료들에게 띄우는 열두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가장 약한 존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는 모두를 위한 사회이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고 여전히 어린이를 품고 살아가기에.”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찬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손쉽게 혐오당하는 어린 사람들…….
가장 약한 존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는
모두를 위한 사회이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고 여전히 어린이를 품고 살아가기에.”

 

김지은 평론가, 서한영교 작가, 배경내 활동가, 변진경 기자……

 

어린이의 곁에서 어린이가 살아갈 세상을 함께 고민하고 활동하는
12명의 어른 동료들이
내 안의 어린이와 내 옆의 어린이들에게
띄우는 편지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에 대한 담론은 지나치게 빈약하고 납작하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날 선언〉이 발표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어린이 보호나 성장이 아닌 현재의 어린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서나 연구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담론이 빈약한 만큼 어린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 역시 형해화되어 있다.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어린이는 마치 대접받는 귀한 존재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정작 어린이를 환대하는 공간은 찾기가 어렵다. 쉼이나 놀이를 허용하는 공간은 너무나 빈약하고 카페나 식당은 대놓고 ‘노 키즈 존’을 내건다. 학교에서는 어떨까. 학생 수가 줄어서 많은 학교가 문을 닫거나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학생(어린이·청소년)의 인권과 돌봄에 대한 논의는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 많은 어린이·청소년을 고통스럽게 하는 학습 노동의 심각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질 뿐이다. 가정이라고 다를까. 어린이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가도 때로는 또 한없이 부담스럽거나 외면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육아에 ‘독박’ 딱지를 붙이고 대상화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오랜 시간 어린이의 삶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온 저자들의 글을 통해 어린이에 대한 담론의 지평을 한 단계 깊고 넓게 만든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어린이라는 사상’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제공한다. 〈주기만 하는 사랑은 없다〉는 입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장희숙의 이야기이다. 청소년 야학과 대안학교의 교사, 입양원 봉사자로서 경험을 연결하며 돌봄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특수학교 교사인 공진하가 쓴 〈‘어린이’ 이야기에 끼워 넣고 싶은 내가 아는 어린이들〉는 우리가 ‘어린이’를 생각할 때 떠올리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논의의 장에 끌어올린다. ‘어린이’에 방점이 찍힐 때는 장애라는 특성이 고려되지 못하고, ‘장애’에 방점이 찍힐 때는 어린이라는 보편성이 고려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 뼈아프면서도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주는 기회도 제공한다. 〈품의 민주주의〉에서 서한영교 작가는 어린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모순적 태도를 꼬집으며 어린이의 고유함을 천명한다. 부모의 소유물이거나 보호와 육성의 대상이거나 미래의 꿈나무가 아니라, 동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지구 거주자로서 ‘함께’하는 법을 익혀 나가는 시민으로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동반자로서 어린이 말이다.

 

2부 ‘우리는 어린이를 품고 산다’는 우리가 한때 어린이였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어린이를 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인권운동가인 배경내는 〈어린 존재를 품고, 지금 여기에〉에서 어린이 시절의 경험이 자신을 인권운동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며 “나에게 인권운동이란 내 안의 어린이를 옹호하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현유림은 어린이·청소년으로서 학교에서 겪었던 인권 침해를 잊지 않고 교사로서 학교에 돌아와 어린이의 옆에 선 스토리를 전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글의 제목은, 학교 안팎에서 여러 폭력과 위험 앞에 속수무책으로 존재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하다. 놀이/교육 연구자이자 변화의월담 활동가인 김윤일은 〈몸과 놀이로 만나는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우리 몸의 과거와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 몸이 대상화, 도구화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몸의 감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놀이란 무엇일지에 대해서 제언한다.


세 편의 글 모두 어린이·청소년 시절을 잊지 않고 자란 어른들이 어떻게 어린이 곁에서 든든한 동료가 되었는지에 대한 서사가 인상적이다.

 

3부는 ‘어린이와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 어린이와 관련한 사건에 대한 심층 기사를 통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통렬히 비판해 온 변진경 기자(〈말랑한 어린이, 딱딱한 세상〉)는 “어린이의 시선”에서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기를 주문한다. 점점 더 좁은 섬으로 어린이들이 몰려들고 그 섬은 점점 더 작아지는 현실에서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아이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동인권 변호사인 김희진(〈아동인권이 모두의 인권인 이유〉)은 아동기를 나중의 성과를 일궈 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마땅히 중요한 삶의 단계로서 인정하는 ‘아동인권’이 가진 함의를 강조하며 가장 작은 존재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은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아동의 미래를 생각할 때 자신이 가진 법률적 지식을 승패가 있는 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조정과 협치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에 쓰려고 애쓴다는 구절은 많은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수단화하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무슨 일이 있으면 책으로 달려와!〉에서 독서 문화 생태계에서 고립되기 쉬운 어린이 독자의 위치를 이야기하며 책과 어린이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이야기한다. 어린이에게 책은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배우는 교실 그 자체라고 말하는 저자는 책의 자유가 곧 어린이의 자유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함께하는 그 모든 순간에 자란다〉는 기찻길옆작은학교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서로돌봄의 교육학을 구현해 온 김중미 작가의 글이다. 돌봄에 대한 논의에서 정작 ‘어린이’는 배제되어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어린이에 대한 돌봄이 학교 담장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말하는 돌봄은 그저 어린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돕고, 나누고, 함께하는 데서 구현되는 것이다.

 

책의 시작과 마무리는 만화와 시를 매개로 구성했다. 이 책을 여는 만화는 어린이의 마음과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해서 표현해 온 소복이의 작품이다. 나의 열 살 적 이야기와 내 아이의 열 살을 교차시켜 보여 주는 〈엄마는 열 살에, 나는 열 살에〉는 “더 나은 부모 되기”를 실천 중인 이 땅의 많은 어른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실린 서정홍 시인의 글은 자연을 잃고 살아가는 어린 벗들에게 보내는 이야기이다. 〈어린이날에 태어난 산골 할아버지가 어린이들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저자는 돈과 편리함을 추구하느라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을 상기시키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좋은 상상’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목록을 통해 구체화한다.

 

어린이에 대한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시선에 맞서 어린이들의 고유함이 존중받고 어린이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현실은 아직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어린이에 대한 담론이 더 다양하고 풍부해질수록 우리 사회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